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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50만원이면 "네트웍 프린팅"까지 되는 "컬러" "레이저" 프린터를 살 수 있지만...
내가 처음 PC를 접하던 시절엔 "프린터"는 매장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당시 한전 전산실에 있던 형이 가끔 집에 들고 들어왔던 132 컬럼 프린터 용지에 어설프게 찍힌 글자들로 프린터의 존재를 처음 인식했던 것 같다. 타자기처럼 활자가 미리 세겨진 해머를 때려 인쇄하는, 말하자면 텔레타이프(teletype; tty) 방식이었다. 당시 전기요금고지서(우리 형은 지금도 누가 전기"세"라고 말하면 전기"요금"이라고 정정해준다ㅋㅋ)는 텔레타이프로 찍은 것이라 한글이 볼품 없었다. 뭐~ 수천만장을 찍어야 하는 고지서니까 예쁜 것보단 빠른게 중요했겠지...
중학교 때 들락거리던 컴퓨터 매장에서, 보석글로 "불법 복사"해 줄 소프트웨어 목록을 작성해서 프린터로 인쇄하면서 처음으로 실체를 만져 볼 수 있었는데, 그 무렵 성적처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프린터를 직접 다루게 됐는데, 세로선이 잘 맞지 않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튼 그 때 쓰던 프린터가 엡손의 걸작 LQ-1550이었다. LQ-1550은 24핀(한 줄에 24픽셀)으로 132컬럼(한 줄에 132글자)을 초고속으로 찍어댔지만 수백만원을 넘는 고가품이어서 개인은 엄두도 낼 수 었었다. 그 무렵 등장한 것이 LX-800인데, 9핀(한 줄에 9픽셀)으로 80컬럼(한 줄에 80글자)을 느릿 느릿 찍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내 수준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었다.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9픽셀...로는 한글을 표현할 수가 없다.(웹브라우져에서 font-size:9px인 글자를 떠올려보자...)

한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가로x세로로 몇 픽셀이 필요할까? 세로는 "롤"이나 "룰"을 떠올리면 된다. 이 글자를 가로 획이 겹치지 않도록 그리려면 14픽셀(ㄹ:5픽셀+ㅗ:4픽셀+ㄹ:5픽셀), 위아래 한줄씩의 여백을 포함하면 최소 16픽셀이 필요하다. 가로는 "뼤"나 "쪠"를 떠올려 보자. 이 글자를 세로 획이 겹치지 않도록 그리려면 10픽셀(ㅃ:5+ㅖ:5), 여기에 좌우로 한 픽셀씩의 여백을 포함하면 12이다. 여러가지 기술적인 요소를 고려해서  8비트 애플에서는 한글 한 글자를 14x16으로 그렸고, 16비트 DOS에서는 16x16픽셀로 그렸었다.

요즘 레이저 프린터는 저가형도 600dpi(1인치 600픽셀), 보통의 한 줄이 200픽셀 이상 점으로 구성되지만, 당시에는 24픽셀을 찍는 프린터도 너무 고가였다. 그래서 나온 꼼수가 한 줄을 세 번에 나눠서 찍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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