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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너무 더워서 잠을 깼다. 어제 밤, 에어컨을 끄면서 창문을 안 열었던 것이다. 모처럼 공휴일에 일찍 일어났는데, 할 일이 없다. 창 밖을 보니 비가 올 듯 말 듯... 어제 이마트에서 사온 설익은 사과를 하나 베어먹고, 카메라를 챙겨서 나섰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을 실천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탄천의 교각들의 그래피티를 찍는 것이다. 자전거 핸들에 카메라 가방을 바짝 올려서 묶고(자전거용 백이나 짐받이를 사야겠다) 집을 나섰다. 꾸물꾸물하던 하늘에도 여기저기 푸릇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hike-1.png

일단 방향을 하류쪽으로 잡고 첫번째 교각의 그래피티를 찍으면서 카메라의 파라메터들을 이것 저것 실험했다. 자전거가 두번째 교각에 다달았을 즈음... OTL 교각엔 예쁜(?) 새가 나는 마을이 그려져 있었다. 할 일 없는 공무원들이 그래피티를 다 지우고 그 위에 공사장 펜스에나 있을 법한 ?이발소 그림을 덧칠해 놓았던 것이다. 그 다음 교각도 마찬가지... :'( 안쪽 교각에 작은 그래피티가 하나 남아있었다. hike-2.png

그 다음 교각엔 아파트 단지 담벼락에나 있을 법한 예쁜 꽃 마을... 그래피티 탐사는 이쯤에서 포기해야겠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내친 김에 자전거로 한강까지 가보기로 했다.

성남 비행장(태평역쯤 되려나)을 지나면서 노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흠... 자전거 도로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는 것인가... -.-; 그렇게 10여 킬로를 달리다가 학여울에 도착. 사실, 학여울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역 이름에 학여울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여기서 양재천을 거슬러 과천 가는 길과, 잠실을 거쳐 한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hike-3.png

수정된 목표는 한강이 었으므로 잠실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멀리 코스모 타워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 건너편으로는 종합운동장. 그리고 한강이다. 여기서 강을 거슬러 미사리 쪽으로 가는 길과 강을 따라 여의도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다시 갈라진다. 생각 보다 가까웠다. 이 정도면 한나절 거리다. 초반에 사진찍느라고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이 채 안걸렸다. 여의도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공사중인 영동대교를 지나고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인다. 팔자 좋은 사람들은 한강에서 수상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물어보고 싶다. 그 물 먹으면 맛있냐?

하늘에 조각 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어쩌구하는 가요가 있었지. 시간이 좀 지나긴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긴했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그렇지... 돈만 있으면...

벤치가 보이길래 잠시 쉬어가려는데, 물이 없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일단 시내로 들어가 물을 사오기로 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생각하고 그래피티 가득한(!!) 터널(?)을 지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니 신천지다. 여기가 어드메뇨~ 하며 두리번 두리번... 압구정 갤러리아 앞이었다 -.-; 그냥 파워에이드를 하나 사서 바로 한강 쪽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대충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고, 남은 체력을 다 소모한다면 여의도 아니라 상암동까지도 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다. 결국 이쯤에서 돌아서기로 했다. 뭐 딱히 어디까지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한강까지가 목표였으므로 불만도 없다. hike-4.png

그렇게 다시 잠실을 거쳐 탄천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한참 강을 거슬러 오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모하냐? 자전거 타고 한강 왔다 가는 길이다. 미틴 넘... 지금 어딘데? 에~에~ 그러니까... (두리번 두리번) 웅! 삼호물산~ 동원산업~ 밑이다. 어쩌구 저쩌구... 저녁에 한 잔하자. 어디서? 몰라. 알았다. 장소 정해지면 연락해라. 그리곤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는데... 휙 지나가는 표지판... 살기좋은 서초... 어쩌구... -.-??? 서초? 왠 서초? 왠 삼호물산? 헉뜨!!

그렇다... 길을 잘못 든 것이다. 학여울에서 탄천으로 갔어야 했는데... 양재천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어디메뇨~ 두리번 두리번.. 교육문화회관! OTL 그렇게 양재천을 거의 돌파한 뒤에야 쓸쓸히 자전거를 돌렸다. :'( 한참을 되짚어 학여울... 어처구니가 없다. 설상가상, 체력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3x7단을 밟을 힘이 없었다. 결국 2x7단으로 내리고 설렁설렁 탄천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에 올 때는 얼마 안되던 길이 이다지도 멀까... 멀리 탄천 물놀이장 천막이 보인다. T.T 다 왔다!! lol 만쉐이! 남은 힘을 모두 모아 앞으로 전진! 그렇게 때로는 헐레벌떡 때로는 설렁설렁 수내동을 향해 달렸다. 황새울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자전거 도로 끄트머리에 미끌~ 그리고 집에 도착.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열혈 공휴일의 후유증! 손등 팔등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애초에 이런 장거리 계획도 없었고, 계획했다고 하더라도 내 머리에서 썬크림 같은게 떠오를 리가 만무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등을 두눈으로 보고서야 세삼 깨닫는 것이다.

이리하여 오랜 만의 열혈 모드 종료. 오늘의 교훈: 안하던 짓을 하면 (죽지는 않더라도) 손발이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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