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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몇가지 해법 중의 하나가 "미리 정해놓고 보기"다. 영화가 아닌 다른 것을 미리 결정하면, 거기에 따라 영화가 결정된다. 그렇게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이다. 이를테면, 감독, 배우 혹은 유력한 스태프(영화에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태프 여야 한다)를 정하면 그의 연출작, 출연작을 주욱 따라가면서 보는 것이다.

봄날은 간다를 우연히 TV로 다시 보게 되었다. 네번째 보는 것 같다. 처음 극장에서, 그리고 비디오로... 그리고 컴퓨터로, TV로...

감독 ?허진호는 단 두 편의 영화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감독이 되었다.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볼 때는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 ?심은하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그녀는 그 기대를 부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주라고 할만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녀가 은퇴한 뒤에도 복귀를 촉구하는 팬클럽을 끌고다니는 전설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나에게도 다슬이의 폭주는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이 나라의 영화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이미지스트 ?허진호의 존재였다.

몇 년 뒤 그는 두번째 장편 봄날은 간다를 통해 스스로를 아티스트 반열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그것이 그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좀 더 대중적인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갈 때 쯤 그가 "욘사마"와 함께 돌아왔다. ?배용준, ?손예진 주연의 외출은 말 그대로 주연 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언급되어야지, ?허진호 감독의 외출이라고 할 만한 영화가 아니다. 실망할 것이라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알면서도 보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그의 영화에서는 그렇게 소리내어 우는 주인공이 없었다. 화면은 여전히 "뽀사시"하고, 대사는 더욱 감각적이지만 전혀 ?허진호스럽지 않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봤건만, - 양파링 한봉지를 털어넣은 것 같은 - 입안 가득한 까끌까끌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알듯 모를듯 모호하던 까끌까끌함은 오늘 조그만 TV로 다시 보는 봄날은 간다를 통해 명확해졌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떠나간 버스와 여자는 잡는게 아니야..."

봄은 가고, 다시 또 온다. 그리고 그 봄날은 내 손이 기억하는 그 봄날이 아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재주는 적은 예산은 "예쁜"영화를 만드는 재주 뿐인가? 그에게 과연 다시 솔잎을 먹을 용기가 남아 있는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한 편도 세 편도 아닌, 단 두 편의 영화로만 기억되는 감독들이 참 많다. 그 목록에 ?허진호도 추가되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데뷔작에서 배우들의 힘과 연출의 참신함으로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두번째 영화에서 그것이 단지 배우들의 힘에 의한것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다. 그리고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만족시킬것이라는 회심의 역작을 들고 돌아온다. 그리고 잊혀진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김윤아의 노래가 잘린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화면 없이도 머리 속에선 노래가 흘러간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와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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