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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movie

행복

iolo 2007. 10. 13. 16:29
오랜 만에 평촌 키넥스에서 본 영화...

허진호의 "행복"...

그렇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임수정과 황정민의 행복이 아니고, 허진호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영화는 보기 전에도, 보는 중에도 보고 나서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영화 자체와는 무관하게, 나는 슬펐다.

배우들의 눈물 한 방울 없이...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던 8월의 크리스마스...
쉴새없이 눈물을 뽑아대는 배우들... 그런 영화를 멀뚱히 쳐다보는 관객들...
뽀뽀 한 번 없이도 사진처럼 선명했던 다림과 정원의 사랑...
어설픈 베드신까지 동원해도 뜬금없기만 한 은희와 영수의 사랑...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나직히 속삭이던 상우...
"개새끼 니가 사람이니"라며 거침없이 쏘아붙이다가, "잘할께~ 잘할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은희...
꽃단장을 하고 양산을 들고, 총총히 골목길로 사라지는 상우의 할머니...
눈내리는 산 길을 걸어, 은희가 없는 행복의 집으로 돌아가는 영수...

행복은 말이 너무 많다. 미주알 고주알... 배우들이 먼저 눈물을 쏟아내고,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같은) 대사를 쏟아내고,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하고, 카메라를 바짝 들이댄다.
그래 그래 알았다구 알았어~ 사랑이 말처럼 그렇게 낭만적이 아니라는 거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영수에게 돌을 던지라? 행복은 먼데 있는게 아니라고? 뭐가 진정한 행복인지 생각 좀 하고 살라고? 행복은 양말같은 거라고 하고싶은 거자나?
행복은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관객을 제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구질구질한 설명없이 연출만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던... 허진호의 봄날은 갔다.

많은 젊고 재능있는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스스로의 영화의 무게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잊혀지는 것일까?

영화 중반(영수와 은희가 살림을 차려 이사나가는 장면)에 흘러나오는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 엔딩 크레딧과 함께 다시 한번 흘러나오는 "행복의 나라로"가 주는 미묘한 대비... (음악적 취향과 상관없이) 앞의 것은 김광석이나 양희은의 행복의 나라로였으면 어땠을까라는 공상을 해본다.

나도 너무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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