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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였나... 자율학습시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봉숭아를 우연히 들었다. 노래말 몇 마디만으로 노래 제목을 알아내는 일이 지금처럼 쉬운 시대가 아니었다. 여하튼, 친구 박준형이가 ?정태춘이라는 가수의 아내가 부른 ?봉숭아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관심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가진 여자 가수였다. 며칠 뒤 구입한 LP(기억에는 무슨 발췌곡집이었다)에서 그녀의 이름이 ?박은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LP의 다른 노래들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노래듣기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형이 두고 간 통기타로 포크송들을 뚱당 거렸는데, 어머니께선 내가 ?정태춘의 노래를 웅얼거리고 있으면 그런 칙칙한 노래가 있냐고 하셨다. 세상은 이미 통기타 시대가 아니었지만, 내겐 시작일 뿐이었다.

그 무렵에 산 테이프 중에 ?양희은이 처음 부른 노래라는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렵의 내 취향이 고운 목소리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양희은도 나쁘지는 않지만, 도미전의 목소리로 부른 하늘을 들으면, 지금의 ?양희은에게 분노를 느낄 정도다.

요즘은 정태춘 박은옥의 예전 노래들을 잘 듣지 않지만, ?떠나가는 배, ?촛불, ?사랑하는 이에게는 자타가 공인하는 ?나의 애창곡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은 ?정태춘이 부른 ?시인의 마을, ?서해에서, ?장서방네 노을, ?북한강에서, ?애고 도솔천아, ?탁발승의 새벽노래, ?사망부가, ?그의 노래는, ?얘기2와 박은옥이 부른 ?바람, ?한밤 중에 한 시간같은 노래들이었다.

그렇게 청춘의 시작이라 할만한 고등학교 시절을 그 칙칙한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를 들으며 보냈고, 그것은 단순히 노래듣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노래 하나가, 책 한 권이, 영화 한 편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면, 어쩌면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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